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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후기 : 스스로 행복하라 (저자 : 법정) 본문
무소유라는 책의 저자로 유명하신 법정스님의 책을 읽어봤습니다. '스스로 행복하라'는 법정 스님의 대표 수필 29편을 묶어낸 책입니다.
뜨락에 철쭉, 라일락, 자목련 등 여러 가지 꽃들이 한창 피어 있습니다. 더러 꽃구경 안 가십니까. 세상 사는 데 바쁘다고 해서 모른체하지 말고 일 년에 한두 차례씩 피어나는 꽃들 앞에 서 보세요.
법정 스님은 꽃은 저마다의 모습을 하고 있으며 서로 닮으려는 일이 없다고 말합니다. 그렇게 자기 내면의 아름답고 향기로운 요소들을 마구 발산하는 꽃을 보며, 그러한 꽃을 정면교사로 삼아야 한다고 얘기합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 그릇과 개성이 다르지만 남의 그릇을 탐하고 비교하면서 남처럼 살길 바랍니다.
스스로 남의 그림자가 되길 자처하면서 말이죠.
내 삶을 지키기 위해서는 나만의 빛깔과 향기를 알고서 나의 삶을 살아가는 것, 그게 자연을 보며 우리가 배울 수 있는 점입니다.
모든 것은 항상 변합니다. 저 꽃들도 며칠지나면 다 지고 맙니다.
지금 이 자리에 모인 우리들도 저마다 자기에게 주어진 시간과 능력이 다하면 언젠가는 이 지상에서 덧없이 사라져 갈 것입니다.
순간순간 우리가 하는 일은 곧 내 인생의 내용이 되고 개인의 역사가 됩니다.
내 인생은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이지 누가 만들어 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저마다 자기 삶에 대한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 지금 출가를 꿈꾸는 그대에게 >>
출가는 집을 나온다는 뜻입니다. 종교적인 의미로는 집착과 타성의 집에서 훨훨 떨치고 나오는 것을 출가라고 합니다.
가출가 출가는 다릅니다. 가출은 마지못해 집을 떠나오는 것이고 출가는 자기 의지와 선택에 따라 삶의 궤도를 수정해 나가기 위해 나오는 것입니다.
가끔 집을 나가고 싶은 충동 같은 것을 느끼지 않습니까? 그것이 바로 출가 정신입니다.
일상의 삶 속에서도 소용돌이나 늪에 갇혀 허우적거릴 것이 아니라 거기에서 헤쳐 나올 수 있어야 합니다.
자신의 삶에 만족할 수 없어 보다 자기답고 꽃다운, 보다 인간다운 삶은 없을까 찾게 되는 것이 바로 출가 정신입니다.
'이게 아닌데'하는 생각이 든 적이 있다면, 삶을 변화시켜야 하고, 낡은 타성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그릇된 생활 습관과 잘못된 업에서 벗어나서 새로운 업을 지어야 합니다.
가끔 일상 속에서 자유롭지만 훌쩍 떠나고 싶은 기분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런 감정이 출가 정신이었음을 깨달았습니다. 앞으로는 반복되고 무료한 타성의 늪에서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에 귀 기울여주자는 생각이 듭니다.
부처님은 기원정사에 머물 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진실로 아무것도 갖지 않은 사람은 행복하다. 지혜로운 사람은 어떤 것도 자기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자 보라,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이 여기저기에 얽매여 그 얼마나 괴로움을 당하고 있는가를!"
모든 욕망에는 근심이 따릅니다. 불필요한 욕구는 고통을 가져옵니다. 자기 주변을 정리해야 합니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정리하는 습관을 들어야 합니다. 너저분한 것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한 때 필요해서 사들인 것들이 집 안에 쌓이면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어느 집을 가나 사람이 가구와 물건에 짓눌려 옹색해집니다.
내가 갖기는 짐스럽고 남주기는 아까운 것들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늘 깨어 있는 것이 출가 정신이라면 물질의 더미에서 깨어나는 것 역시 출가입니다. 우리를 가두고 있는 비좁은 소유의 방에서 벗어나는 것이 곧 진정한 출가입니다.
법정 스님은 정신적인 출가 외에도 물질적인 출가에 대해 이야기 합니다. 많은 물건들에 얽매이지 않는 게 행복해지는 길이라는 말에 깊이 공감합니다. 당시에는 너무 필요해서 구매했지만 시간이 지나고 쓸모없어지고 자리만 차지하는 물건들이 너무 많네요. 버리기 아깝고 갖기에는 싫은 물건들을 정리해야 겠습니다.
<< 오두막 편지 >>
며칠 전에 도배를 마쳤는데, 아직 빈방인 채 그대로 있다. 방석이나 경상, 다구 등 아무것도 들여놓지 않았다.
나는 이 빈방의 상태가 좋다. 거치적거릴 게 없는 텅 빈 공간이 넉넉해서 좋다.
얼마쯤의 불편과 아쉬움이 오히려 즐길 만하다.
물론 언제까지고 빈방으로 살 수는 없겠지만, 할 수 있는 한 그 기간을 자꾸만 연장하고 싶다.
난로 굴뚝 터진 모서리에 깃을 치고 사는 박새를 보며 지나온 내 보금자리를 뒤돌아보았다.
나도 저 박새처럼 무심할 수 있다면 그 어디에도 집착함이 없이 홀가분하게 살겠구나 싶다.
저 박새가 알을 까 새끼를 데리고 보금자리를 떠나갈 때까지는, 보리누름에 추위가 있더라도 난로에 불을 지필 수가 없겠다. 내가 오늘 그 보금자리를 보았으니, 그것을 지키고 보살필 책임이 내게 주어진 것이다.
보는 자에게는 책임이 따른다. 그리고 그 속에서 함께 사는 기쁨도 누린다.
보는 자에게 책임이 따른다는 글귀가 너무 좋아서 적어봤습니다. 배고픈 길강아지나 고양이들을 보면 마음이 가고, 행여 목마르진 않을지 저녀석들의 밤자리는 춥지 않을지 신경이 쓰였던 감정들이 떠올랐습니다.
<< 텅 빈 충만 >>
나는 이 오디오 말고도 산에서 살면서 두 차례나 치워 없앤 적이 있다.
음악이 싫어서가 아니라, 그 소유의 더미가 싫어서였다. 치워 버릴 때는 애써 모았던 음반까지도 깡그리 없애 버린다.
이제 내 귀에는 대숲을 스쳐 오는 바람 소리 속에서, 맑게 흐르는 산골의 시냇물에서, 혹은 숲에서 우짖는 새소리에서, 비발디나 바흐의 가락보다 더 그윽한 음악을 들을 수 있다. 빈방에 홀로 앉아 있으면 모든 것이 넉넉하고 충분하다. 텅 비어 있기 때문에 오히려 가득 찼을 때보다도 더 충만하다.
<< 물소리 바람 소리 >>
방 안 벽에 대못을 두 개 박아 가사와 장삼을 걸고, 반쯤 꽃이 핀 동백꽃 가지를 꺽어다 백자 지통에 꽂아 놓으니 휑하던 방 안에 금새 봄기운이 감도는 것 같았다. 그리고 임제 선사의 어록 중에서 좋아하는 한 구절 '즉시현금 갱무시절(卽是現今 更無時節)'이라고 쓴 족자를 걸어 놓으니 낯설기만 하던 방이 조금은 익숙해졌다.
'바로 지금이지 다시 시절은 없다'는 말. 한번 지나가 버린 과거를 가지고 되씹거나 아직 오지도 않은 미래에 기대를 두지 말고, 바로 지금 그 자리에서 최대한으로 살라는 이 법문을 대할 때마다 나는 기운이 솟는다.
우리가 사는 것은 바로 지금 여기다. 이 자리에서 순간순간을 자기 자신답게 최선을 기울여 살 수 있다면, 그 어떤 상황 아래서라도 우리는 결코 후회하지 않을 인생을 보내게 될 것이다.
'즉시현금 갱무시절'. 후회없는 삶을 위해서는 과거나 미래에 연연하지 말고 현재를 충실히 살라는 말은 참 좋은 문장입니다. 가슴 속에 심어두고 자주 꺼내어보고 싶습니다.
<< 버리고 떠나기 >>
한 해가 기우는 마지막 달에 자기 몫의 삶을 살고 있는 우리는 저마다 오던 길을 한 번쯤 되돌아볼 수 있어야 한다.
지금까지의 삶에 만족하고 있다면 그는 새로운 삶을 포기한 인생의 중고품이나 다름이 없다.
그의 혼은 이미 빛을 잃고 무디어진 것이다. 우리가 산다는 것은 끝없는 탐구이고 시도이며 실험이다. 그런데 이 탐구와 시도와 실험이 따르지 않는다면, 삶은 이미 끝난 것이나 다름이 없다.
이제 나는 자취 생활이 지겨워 우선 묵은 둥지에서 떠나 보기로 했다. 올겨울은 히말라야를 찾아가 새로운 삶을 시작해 보고 싶다. 내 삶은 그 누구도 아닌 내 자신이 가꾸어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 덜 쓰고 덜 버리기 >>
야생 동물들은 자신들이 몸담고 사는 둥지나 환경을 결코 더럽히지 않는다. 문명하고 개화했다는 사람들만이 자기네의 생활 환경을 허물고 더럽힌다.
언젠가 광릉 수목원에 갔더니, 우리가 함부로 버리는 쓰레기의 썩는 기간을 다음과 같이 명시하고 있었다. 양철 깡통이 다 삭아 없어지려면 1백 년이 걸리고, 알루미늄 캔은 5백 년, 플라스틱과 유리는 영구적이고, 비닐은 반영구적이라고 했다. 그리고 여기저기 허옇게 굴러다니는 스티로폼은 1천 년 이상 걸린다는 것이다. 끔찍한 일이다.
무의식에 깃든 소비와 행동이 지구를 오염시키고 있다는 걸 미처 생각하지 못하고 사는 것 같습니다. 쓰레기로 인한 환경 문제가 심각한 가운데, 자연을 위해서라도 적은 것을 귀하고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 선택이 아닌 필수임을 느낍니다.
<< 거룩한 가난 >>
서책을 통해서나마 프란체스코 성인을 만나 그의 가르침에 귀 기울이며 공감할 수 있는 인연에, 무한한 감사를 드린다.
지식은 사람을 교만하게 만들기 쉬운데 사랑은 감화를 시킨다. 지식은 행동을 동반할 때에만 가치가 있다.
덕행의 실천보다 더 좋은 설교가 어디 있겠는가. 성인의 거룩한 가난이 오늘의 수행자들을 환하게 비추고 있다.
<< 나누어 가질 때 인간이 된다 >>
마르틴 부버는 그의 <<인간의 길>>에서 하느님은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이렇게 묻는다고 했다.
"너는 네 세상 어디에 있느냐? 네게 주어진 몇 해가 지나고 몇 날이 지났는데, 그래 너는 네 세상 어디쯤에 와 있느냐?"
언젠가 이 세상을 하직해야 할 우리들은 저마다 자신의 목소리로 그와 같이 물을 수 있어야 한다.
사람은 더 말할 것도 없이 유한한 존재다. 한 번 지나가면 돌이킬 수 없는 그러한 존재이므로 더욱 사람답게 살아야 한다. 그래야 한스러운 일도 적고 생에 대한 미련도 없을 것이다.
인간다운 행위란 무엇일까? 우선 나누어 가질 수 있어야 한다. 타인과 함께 나누어 가져야 '이웃'이 될 수 있고, 인간적인 관계가 이루어진다. 사람은 독립적인 존재가 아니다. 관계를 통해 비로소 사람이 될 수 있다. 우리들의 삶이 곧 관계이고, 우리는 관계에 의해 존재하고 관계는 인간을 심화시킨다.
흔히 베푼다는 표현을 쓰고 있는데 그것은 잘못된 말인 것 같다. 원천적으로 자기 것이란 있을 수 없으므로 나누어 가지는 것이다. 이 우주의 선물을, 우리에게 잠시 맡겨진 그 선물을 함께 나누어 가지는 것이지, 결코 베푸는 것이 아님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나누어 가지는 것이 어찌 물건 만이겠는가. 부드러운 말 한마디, 따뜻한 눈길, 함께 정하고 기뻐하는 것도 나누어 가짐이다. 그러니 많이 차지하고 있다고 해서 부자가 아니라. 많이 나누어 가질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부자다.
많이 나누어 가질 때 비로소 인간이 된다. 책을 잃으면서 가장 와닿았던 문장입니다. 물질적인 베품 뿐만 아니라 따듯한 한마디, 눈빛, 관심이 곧 나눔이라는 걸 생각하면서 살아가야겠습니다.
<< 무소유 >>
우리는 필요에 의해 물건을 갖게 되지만, 때로는 그 물건 때문에 적잖이 마음이 쓰이게 된다.
그러니까 무엇인가를 갖는다는 것은 다른 한편 무엇인가에 얽매인다는 것이다.
필요에 따라 가졌던 것이 도리어 우리를 불필요하게 얽매일 때 주객이 전도되어 우리는 가짐 당하게 된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많이 가지고 있다는 것은 흔히 자랑거리로 여겨지지만, 그만큼 많이 얽혀있다는 측면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인간의 역사는 어떻게 보면 소유사처럼 느껴진다. 보다 많은 자기네 몫을 위해 끊임없이 싸우고 있는 것 같다. 소유욕은 한정이 없고 휴일도 없다. 그저 한라도 더 많이 갖고자 하는 일념으로 출렁거리고 있는 것이다. 물건만으로 성에 차지 않아 사람까지 소유하려 든다.
크게 버리는 사람이 크게 얻을 수 있다는 말이 있다. 아무것도 갖기 않을 때 비로소 온 세상을 갖게 된다는 것은 무소유의 또 다른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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